다섯째 날
게으르게 뒹굴뒹굴 하는 것 너무 좋음
내방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날씨가 좋아서 공원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공원의 새들이 풀밭에서 걸어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호숫가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데 새소리가 원래 이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잘 들렸다.
특별히 귀기울이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풀밭을 보는데 매직아이가... ?
수퍼마켓에 가서 사과 백퍼센트 직접짠 주스랑 집에 필요한거 몇가지 사고 집에 왔다.
아니 너무 아무 명현현상도 없고, 평소랑 똑같으니 이거 매일 후기 올려봤자 노잼이겠구나 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제 귀찮아서 주스 그만 짜려고 한다.
요리안하고, 밥안먹고, 안씹고, 설거지도 안하니 시간이 많아지고 편하다.
이미 짜놓은 주스랑 백퍼센트 주스들로 몇일 더 버티다가 그만해야지.
단식후 보식을 어떻게 해야하나 찾아봤다.
과일, 채소, 스무디, 수프, 샐러드로 시작하고 점점 곡식, 콩류 먹다가 지방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한다. 나는 비건이라 괜찮지만 안먹다가 갑자기 동물성식품이나 기름에 튀긴거 먹으면 속뒤집어지고 어떤사람들은 갑자기 살이 확 찔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이레네오라는 자연식물식, 거의 과일식을 하면서 건강정보를 알려주는 유투브채널.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맥두걸박사의 동영상들,
황성수박사의 현미자연식물식 등등 유투브에 빠져서 여러가지를 배웠다.
김치가.. 좋은게 아니었다니... 하.
그렇구나.. 그래도 김치에 액젓이랑 젓갈 안넣으면 동물한테는 해롭지 않으니까 김치볶음밥, 김치찌개는 포기할 수 없다... 괜찮아. 동물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내몸따위
과일식은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만약에 여름에 너무 덥고 입맛이 없으면 수박만 먹고 그런건 하겠는데 삼시세끼를... 노노.. 무겁고 그거 들고 집에 걸어올 생각하면 그냥 식물아무거나 다 먹을것.. 내스타일 아니야
내가 건강때문에 비건하는것도 아니고.
여섯째 날
오늘은 주스 1리터 한 병, 코코넛워터 1리터 한 팩을 들고 일하러 갔다. 이만큼만 마셔도 별로 배도 안고프네. 음식이 먹고 싶긴 한데 주스만 마시는게 너무 편해서 단식 멈추는게 약간 아쉬워진다.. 단식 멈춰도 그닥 많이는 안 먹을 것 같다. 일단, 몇 일 동안 주스만 마셔도 안 죽는다는 걸 알았고, 시간도 많아지고 나쁘지 않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탔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그런걸까, 아니면 내가 예민해진 걸까 아씨.. 냄새 진짜 고약해서 토할뻔 황급히 주머니에 있던 장미향 에센셜오일을 꺼내서 그거 맡으면서 진정했다.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도 분명히 개가 없는데 개냄새가나.... 시력도 뭔가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픽셀들까지 보이는.. 이게 기분탓만은 아닌 것 같다.
어제는 분명히 맑고 따뜻했는데 오늘은 눈이 오고 추웠다. 무슨 하루만에 날씨가 이렇게 바뀌니... 참 당황스럽다 런던..
손가락에 가끔씩 있던 물집이나 물집흉터들이 사라졌다. 여름이면 좀 심해지고 평소에도 가끔 그러던데, 하지만 건조한 건 마찬가지. 추워서 자꾸 히터틀으니까 더 건조한거 같지만 추워죽겠으니 어쩔 수 없다.
집에와서 또 주스한잔을 마시고 타임허브차를 마셨다.
일곱째 날
오늘은 뭔가 기분이 별로였다. 날씨도 별로고. 더 많이 알면 알게 될 수록 이 세상이 얼마나 망가졌고, 지금도 파괴되고 있고, 위험에 처해져 있으며, 사람들이 얼마나 미쳐있고, 잔인한 지 그리고 그 모든 게 다 인간이 한 짓이란 걸.. 너무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지금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더 참혹할 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너무 날씨도 구리고, 바쁘지도 않아서 그런가 오늘은 뭔가 단식 그만하고 뭐좀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워서 그런가 더 배고픈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랄까.
뭐 먹는 것도 없는 데 배탈이 났다. 배가 너무 아팠다. 아니 주스 마시기만 하고 장까지 비워냈는데 도대체 어디서 뭐가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침에는 너무 배가 아파서 약간 신경질이 날 뻔 했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였나.
나도 아직 나를 완벽하게 모르겠다. 언제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때가 오긴 올까?
나는 왜 내 주스단식을 열흘로 결정한 걸까, 별다른 의미는 없었고 그냥 위빠사나가 열흘이었으니까 열흘로 한 것 같은데, 내가 나 열흘동안 주스단식 할꺼야 했을 때, 주스단식 삼일 한번 해보고 두번째는 중도 포기한 하우스메이트가 그건 위험하다느니, 자기가 했던 주스단식 책을 보고 하라느니, 너무 힘들다느니 약간 너 그거 못해의 뜻이 담긴 말을 하길래.
난 그런말을 들으면 황당하다가 약간 거슬리다가 아씨 니가 나보고 못한다고 했으면 나는 그걸 해내야지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아마 이미 말을 내뱉은 후이기 때문에 열흘을 채울 것 같긴 한데 날씨가 안도와주네. 내 단식 마지막날까지 계속 춥다가 나 단식 끝나는 날 비오면서 날이 풀린다는 기상정보.
아직도 주스는 맛있고, 배탈난 거 말고 다른 증상은 아직도 없다.
아, 단식 끝나면 고구마쪄서 으깬거랑, 데친 시금치나 브로콜리, 케일, 당근 이런거 먹으려고 생각중.. 맛있겠다.
여덟째 날
날씨가 너무 춥기도 하고 어제 내가 주스단식을 한다는 걸 처음 알게된 코워커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식으로 그거 왜 하냐고 물어보길래 나는 독소들좀 배출하고 몸을 쉬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독소빼는 걸 왜 하냐고 너 술 많이 마시냐고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진짜 난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카페인 섭취도 거의 없고, 비건이라 어쩐지 명현현상도 없고.. 굳이 열흘동안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 났다.
일하러 가는 길에 바나나랑 샐러드를 샀다.
사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비건 팟타이, 감자튀김, 빵에 올리브, 페스토파스타 이런것들 이었는데 단식하고 바로 기름진 거 먹으면 속이 뒤집히거나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기껏 청소해놓은 몸속에 쓰레기를 끼얹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고, 이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주스만 마셨다.
점심 때 쯤 되니까 한 번 먹어볼까, 뭔가 기대도 되고, 어색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드레싱도 없는 양상추와 몇가지 잎채소들과 방울토마토 몇 개 뿐인 샐러드가 원래 이렇게 맛있었던 거였나, 아삭아삭하고 달달하고, 너무 맛있었다.
바나나도 좀 더 익었어야 했지만 그래도 맛있고.. 맛있었다.
후기들을 보면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다던데.. 난 계속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참고 오늘 싸온 비트루트+석류 주스를 마셨다.
오랜만에 씹었더니 턱이 아프다기 보다는 얼얼하다? 약간 마취된 느낌이고 그런다.
+후기
음. 요 며칠 추워서 껴입고 다녀서 잘 못 느꼈던 건데, 살이 빠지긴 빠졌다. 피부도 더 좋아짐.
한 5일째 되는 날 청각, 후각, 시각이 급 예민해짐을 느낀다.
단식 끝나고 먹는 첫끼의 맛은 엄청나다. 미각 완전 예민해져서 드레싱따위 안뿌린 그냥 샐러드도 맛있고 방울토마토도 달고 제대로 안익은 바나나도 맛있음.
한 번 먹기 시작하니까 계속 먹고 싶다. 음식을 안 먹기가 차라리 쉬운 것 같다.
덜 먹기가 더 힘듬.
아직은 막 기름진거 피하는 중인데 곧 비건 팟타이를 먹으러 가야지 벼르는 중.
내사랑 감자튀김도...
그리고 뭔가 전보다 음식에 대한 갈망이 사라짐. 집에와서 여덟시 넘었으면 굳이 뭐 만들어먹지 말고 간단하게 대충 때우고 어차피 굶어도 그만 주스한잔으로 때워도 뭐..
내가 맛있는 걸 안먹어서 그런가. 아 이제 또 장보고, 요리하고, 씹고먹고, 설거지하고의 반복이겠지..
명현현상이고 뭐고 평소랑 다를게 없어서 내 주스단식 후기는 별로 노잼이다. 흥
그래도 가끔씩 귀찮거나.. 뭐.. 소화기관에게 휴가를 주고 싶을 때는 괜찮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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